아기 근황을 썼으니 이제 내 근황을 좀 적어보겠다.
-
회사 일은 아직도 배울 게 많지만 그래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 파악이 된 것 같다. 머신러닝 관련 업무는, 내가 훈련시킨 모델이랑 이걸 적용할 프로그램이랑 뭐가 안맞아서 그걸 해결하는 과정이 좀 힘들었는데 레포지토리를 막 뒤져보니 이미 옛날에 이 단계를 거친 사람들이 작성해놓은 것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달까. (좀더 구석구석 뒤졌어야했어) 그동안 삽질하며 알게된 것들을 잘 문서화해야겠단 생각은 했지만 과연 내가 그걸 할까? 다들 이렇게 생각만 하고 정리를 안해서 내가 삽질을 오래 한것이니 나라도 꼭 해야겠다…
C++로 하는 백엔드 업무는 많이 적응은 되었지만 가끔(아니, 자주) 파이썬이나 C#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map의 키들을 모아놓은 리스트가 갖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몇줄씩 써야한다고…? ㅠㅠ 그리고 나는 버그 하나를 잡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하필이면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는 레거시 코드 때문인 거라 겁나 큰 리팩토링이 될 것 같아 ‘과연 그걸 지금이라도 해야할 것이냐 아니면 이번에 걍 어떻게든 때우고 나중에 생각할 것이냐’를 두고 토론하다가 일단은 ‘돌아가게만 해놔라’ 해서 그렇게 해놨다…(‘돌아가게만’ 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음) 하지만 그거 땜에 다른 문제가 생겨서 결국엔 다 들어엎는 게 답인 거 같아 2주동안 열심히 들어엎고 뭔가 쓰긴 했는데 이걸 봐줘야할 사람들이 계속 보육휴가를 쓰고 있어 별 피드백을 못받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내일은 이 코드가 승인이 될까? 아마 안될 것 같고 머신러닝 업무에 집중하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여튼 입사 후 첫 임무가 버그 하나 잡는 거였는데 그걸 거의 두달째 못잡고 있는 뭐 그런 이야기. 나도 할 말은 많다. 그건 신입 혼자 잡기엔 너무 큰 벌레였다구요 엉엉
-
스웨덴에서는 아기가 아파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못가게 되어서 부모가 집에서 돌봐야할 경우 쓰는 휴가가 따로 있다. VAB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보육휴가’라고 쓰겠다. 2월이 특히 감기 유행하고 아이들이 많이 아픈 시기라 다들 보육휴가를 쓴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입사하고 나서 얼굴을 거의 못본 사람도 있어서 ‘저렇게 빠져도 괜찮나?’ 싶어 보육휴가에 대해서 찾아보니… 아이 한명당 부모 합쳐 1년에 120일까지 쓸 수 있다고?! 월급의 80퍼센트가 나온다고? (물론 세금은 떼겠지만…) 아기가 아파서 당장 봐줄 사람이 없는데 월급 좀 적게 받는게 별거냐, 1년 120일 보육휴가는 정말 좀 대박인 것 같다. 아픈 아이 돌보는 게 힘들다는 걸 다들 알고 있어서, 누가 계속 빠져서 일이 진전이 안되어도 아무말이 나오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오히려 ‘애가 번갈아 아프다니 몇주째 너무 고생한다’라는 말들을 건네는 문화가 좋고, 계속 빠지고 있는 사람이 미안해하는데 ’이런 상황이 생겨도 프로젝트가 잘 굴러가도록 계획하는 게 우리 역할이다, 니 잘못 아니다’라고 하는 매니저들의 태도도 내 눈에는 아직 신기하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에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참여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출산율을 높이는 데 회사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미래에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고객이 없을 것이므로 사실 회사들한테도 손해가 아닌가. 아이를 낳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남한테 미안할 일 안 생기고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이정도면 아기 낳아봐도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다.
-
출산 후 5개월이 지났다. 4개월이 되었을 때쯤부터 머리가 엄청나게 빠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빠지는데 뭔가 남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수영은 지난달부터 했고 어제는 출산 후 처음으로 조깅을 했다. 임신 12주 정도까진 조깅을 했었으니까 거의 1년만이다. 처음부터 오래 뛰지 말고 점점 늘리라는 조언을 듣고 어제는 가볍게 3킬로를 뛰었는데, 괜찮으니 다음엔 1킬로 더 늘려봐야겠다.
-
하지만 평일에 운동하는 거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아기는 밤잠을 잘 자긴 하는데 자기 전에 칭얼대는 시간이 좀 늘어서 입 안을 봤더니 이가 하나 올라오고 있다… 입안이 간지러웠구나. 여튼 저녁에 아기랑 놀고 재우고 나면 나도 기운이 없어서 그냥 바로 자고 싶다.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정말 회사사람들이랑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서 그냥 남들 점심 먹을 때 같이 먹고 있다. 다들 각자 방이 있고 팀 회의도 원하면 그냥 각자 방안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하기도 하므로… 원한다면 하루종일 스몰토크 한마디도 안하고 퇴근할수는 있는데 그러면 좀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근데 점심시간에 운동도 하고 싶고… 일 끝나고 운동하자니 헬스장에 사람도 많고 애기도 빨리 보고 싶고…>_< 어휴 어렵다 어려워.
-
스웨덴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그동안 바빠서 스웨덴어 공부는 놓은지 오래고, 다시 할 동기부여도 잘 안되었는데… 일할 때는 어차피 하는 말이 거기서 거기지만 스몰토크할 때 앞부분을 놓치고 중간에 끼게되면 맥락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다.(특히 말이 빠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경우) 상대는 내가 당연히 다 알아듣고 있는 줄 알고 신나서 블라블라 막 빠르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나는 ‘저기 있잖아, 일단 ’ㅇㅇ‘가 무슨 뜻이야?’라고 할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그냥 한참 들으며 어떻게든 힌트를 잡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공부하자 공부. 근데 언제?
봄을 알리는 snödroppe와 vintergäck이 피었다. 또 추워지고 눈오고 하겠지만 날이 점점 밝아지고 좀 따뜻해져서 좋다.
'일상 > 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덧 3월 하순 (0) | 2024.03.27 |
---|---|
3월, 입사 후 두 달 (4) | 2024.03.14 |
5개월 아기 근황 (feat. 이유식) (1) | 2024.02.25 |
2월 (0) | 2024.02.03 |
우리 아기, 4개월 (1) | 2024.0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