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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24

돌 아기와 한국에서의 한 달

by Bani B 2024. 9. 21.

한국 갔다 집에 온지 2주가 되었다.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건 아닌가 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여유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돈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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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쉬고 온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잔뜩 하고 온 느낌이 들었다. 날씨가 더웠던 탓도 있거, 아기를 돌보고 케어하느라 그런 것도 있는데,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가 다시 보이고 각종 인프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주말 야간에 아기 병원 찾는 게 힘들었고, 중증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중증이었다면 충남 전체에 영유아 전문 응급실이 없다는데 어떻게 했을지 아찔하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뉴스에, 충북 보은에 사는 세살 아이를 받아주는 병원이 충남, 충북, 대전, 세종, 경기 남부에 없어서 결국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더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 같다. 남편은 ‘한국 의료 공백이 그 정도라면, 아기가 좀 더 클때까지 우리 여기 안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라는 말까지 했고 나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게다가 아기를 데리고 이동할 수단이 없는 게 정말 큰 문제였다. 자가용이 있으면 모를까, 자가용 없으면 아기 정말 못키우겠다 싶었다. 혹시나 해서 콜택시 회사 몇군데 전화해서 카시트 유무를 물었지만, 뭐 그런 걸 묻냐는 반응이거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버스…ㅋㅋㅋ 그래, 시내버스 중 몇 안되는 저상버스를 타고 친구집에 가려고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저상버스 운행 현황을 파악해 그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나갔더랬다. 근데 승차거부ㅋㅋㅋㅋㅋ 문을 안열어주길래 앞으로 달려가 두드리니 앞문을 열어줬다. 유모차 태우려 했더니 안된다고 손사래를 치던 기사님. 이거 태우라고 저상버스가 있는건데 왜 안되냐 했더니, 이런 거 다 태우면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서 안된다 했다. 그리고 급정거하면 아기가 위험하다고. ??? “안고타면 더 위험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할 시간에 벌써 탔을 거고요. 유모차는 자체 브레이크가 있어서 기사님이 안 묶어주셔도 돼요. 그냥 태워주시면 되고 그러라고 이 버스가 있는 거잖아요.”라고 따졌더니 여튼 안된다고 유모차 접으라고 했다….>_< 그래서 저상버스를 굳이 유모차를 접고 아기를 안아서 탔다는 슬픈 이야기.

유모차 접어서 저렇게 두고 아기는 안고 탐…


   시청에 전화해서 물으니 당연히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채로 버스를 탈 수 있는 것이고 버스회사에 전달하겠다 했다. 아우…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비율이 10퍼센트밖에 안된다는데 그나마도 기사님들 교육이 제대로 안되어서 못타다니. 이러니 친구 집은 어떻게 갈 것이며, 각종 볼일은 아기 데리고 어떻게 갈까. 스웨덴에 와서 아기랑 트램이나 버스 탈 때마다 이 일이 자꾸 생각난다.

이렇게 하라고 저상버스가 있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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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모차 끌고 길 걸어다니기 어려운 건 말해뭐해… 민원 넣으려고 사진 찍었는데 귀찮고 피곤해서 그냥 말았다.

제일 짜증나는 것은 보도의 ‘턱’이 아니라… 보도와 차도 사이에 있는 저 울퉁불퉁한 부분이었다. 도로를 재포장하는 과정에서 다시 덮지 않은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하. 저기에 바퀴 걸리면 뭐 그냥 유모차를 통째로 들던가 하는 수밖에 없다. 저런 게 엄청 많아서 걷는 게 힘들었다.

   불법 주차 때문에 골목길이 좁은 건 물론이고, 어린이보호구역에서도 골목길에서도, 차들이 엑셀을 밟아서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차에 대고 욕도 함… 유모차 보고도 그렇게 밟고 싶냐며…
   그나마 개천을 따라 정비해놓은 천변길이 걸을 만해서 산책을 저녁마다 하긴 했지만, 그나마 걸을 만한거지 걷기 좋은 길은 절대 아니었다. 길이 완전 개판임… 길이 끊겼다가 생겼다가, 자전거도로가 오른쪽에 있었다가 왼쪽으로 바뀌었다가 해서 갑자기 쌩쌩 뒤에서 달려오고…

초등학교때부터 살았던 동네라 너무 익숙해서 몰랐지만,사실은 비장애인, 혼자 걸을 수 있는 성인만이 이 동네길을 아무 문제 없이 걸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노인이 느릿느릿 길을 건너가면 경적을 빵빵 울리며 스트레스를 주고, 유모차가 건너가려는데 기다리기 싫었는지 속도를 확 내며 유모차에서 불과 몇 센치 앞을 쌩 지나가 심장을 철렁하게 하고. 길은 울퉁불퉁, 버스는 승차거부. 이게 단지 이 동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자체들이 도시를 정비하고 꾸려나갈 때 교통약자를 세심하게 고려하도록 하는 정부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없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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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주는 우리모두 배탈로 고생하느라 날아가고, 둘째주는 남편이 아주 오랫동안 꿈꿔왔던 하이킹을 하러 일본에 가는 바람에 아기를 돌보느라 다른 걸 할 수가 없었고, 셋째주는 그나마 한번은 서울에, 한번은 전주에 다녀오긴 했는데 그거 말고는 돌잔치 준비하느라 바빴고, 넷째주는 다같이 감기에 걸리고 집안에 일이 생겨 정신없이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출국날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찍은 사진이 정말 없다…

그래도 아기의자 있는 식당이 많아서 종종 외식은 했다.
밖에는 나가고 싶은데 너무 더워서 집근처 백화점으로 후다닥 달려가 몇바퀴 돌고, 아기가 잠들면 앉아서 책을 읽었다. 유아휴게실이 있어서 가장 편했던 공간, 백화점.
아가는 침대보다 바닥에서 자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뒹굴뒹굴. 자다 일어나서 현관까지 굴러간 아가를 주워다 다시 눕히는 건 내 몫…

출국할 때는 콜밴을 불러서 공항에 갔다. 카시트 대여했던거는 이미 반납해버렸고, 밤비행기라 부모님이 인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도 너무 고생이실 거 같아서. 카시트 장착한 콜밴이 와는데 가격도 합리적이고 기사님이 짐 싣고 내리는 것도 도와주셔서 편했다. 다음에도 이용할 듯. 다만 금요일 밤에 경부고속도로 막히는 걸 생각을 안해서>_< 길이 으어엄청 막혔고, 공항 가니 줄도 엄청 길었고, (인천공항이 훌륭한 공항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화장실만 훌륭함…) 부랴부랴 게이트 가서 기저귀 후다닥 갈고 나오니 다 탑승하고>_< 우리가 거의 마지막으로 탔다.

뻗음…
여행 통틀어 가장 휴가같았던 순간: 애 재우고 조용히 마시는 칵테일
집에 오니 가을이 되어 있었다.

아기 데리고 한국 갈 것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결국 내년에도 난 한국에 가겠지? 가족과 친구 아니면 안가고 싶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니까 결국 가겠지. 한국이 조금만 더 가까웠으면 좋겠고(아니, 일단 우크라 전쟁이 빨리 끝나서 러시아 영공 열었음 좋겠고) 한국이 좀더 키즈프렌들리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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